관우가 김보성보다 더 으리으리한 이유
<삼국지>에 등장하는 수많은 인물 중 유일하게 신앙의 대상이 된 인물이 있지요.
바로 관우. 중국 어디를 가나 쉽게 마주칠 수 있는 것이 관우상이고, 중국의 대중들은 관우를 관제(關帝)라 칭하며 받드는데요.
중국뿐 아니라 한국, 일본, 대만, 태국, 싱가포르 등 여러 나라에 사당이 세워지는 등 신앙의 대상으로 추앙받고 있습니다.
한 나라의 수장(首長)도 아닌 일개 무장이었던 관우가 오랜 세월 사람들의 존경을 받고,
신으로까지 추앙받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관우의 의리론> (나채훈 | 보아스)의 저자 나채훈은 그 이유를 관우의 의리에서 찾고 있습니다.
관우의 의리
“대도무문. 정도의 길을 걸으면 거칠 것이 없다. 권모술수 하지 말라는 거예요. 이 세상 최고의 수는 무수(無數)다. 그게 관우의 의리론이란 책에 나와 있습니다. 아무 생각 없이 그냥 가면 되는 거예요. 그냥 의리로.”
의리 열풍을 몰고 온 김보성. 하하와의 의리를 위해 무한도전에 출연했을 때 이런 말을 하죠. 한마디로 김보성은 의리 열풍을 몰고 왔다면, 관우는 그 의리의 끝은 어디인가를 보여준 으리으리한 시대의 인물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요.(^^)
김보성의 말처럼 관우는 권모술수라고는 전혀 쓰지 않았던, 충의와 의리만을 따라 산 의리의 화신이었죠.
우직할 정도로 한번 사귀면 끝까지 지키는 성품의 사나이.
가식이 없고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용기,
어떤 재물로 유혹해도 흔들리지 않는 강직함,
한 번 맺은 약속은 반드시 지키는 신의를 두루 갖췄던 사나이.
관우는 유비, 장비와 도원결의를 맺은 뒤 어떠한 상황에서도 그 의리를 저버리지 않으며,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싸웠습니다.
관우를 자신의 수하로 만들고 싶어 온갖 지극정성을 보였던 조조,
하지만 절대 넘어가지 않고 유비와의 의리를 지켰습니다. 조조뿐이 아니었습니다.
이후엔 손권도 수단 방법을 안 가리고 그를 유혹했는데요, 그중 한 일화가 있습니다.
관우가 최악의 상태에 빠져 맥성이란 작은 성채에 의지하여 구원병을 기다리고 있을 때였습니다. 적진이었던 손권 편에서는 제갈근을 보내 그를 설득합니다. 손권과 사돈을 맺은 다음 협력해서 조조를 치고 한실을 부흥시키면 어떻겠냐고 유인한 것이지요. 그때 관우의 답변은 이러했습니다.
“나는 해현 출신의 이름 없는 무부(武夫)일 뿐으로 우리 주군이신 유비 형님께서 수족처럼 보살펴주는 은혜를 입었소. 어찌 의를 버리고 적국으로 갈 수 있으리오.
만일 이 성이 함락된다면 죽을 뿐이오. 옛말에도 있지 않소. ‘옥을 부술 수는 있어도 그 흰색을 바꿀 수 없고, 대나무를 태울 수 있어도 그 마디를 훼손할 수 없다’고 말이오.
비록 내 몸은 죽어도 이름은 역사에 길이 남으리니 그대는 여러 말 하지 말고 속히 여길 떠나시오.”
결국 관우는 손권에게 참수를 당했고, 때는 건안 24년 12월 관우의 나이 60세였습니다.
그렇게 관우는 외롭게 역사의 무대에서 퇴장했지만, 민중들의 마음에 관우는 이상적인 인간상이자 지도자의 모습으로 자리 잡았지요.
중국의 역대 제왕들은 관우의 신의와 충성심, 의리의 덕목을 널리 떨치게 하여 백성들의 귀감을 삼으려 했고 이러한 작업은 민중들의 관우 숭배와 자연스럽게 결합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장군·제후에서 왕으로, 황제로, 신으로까지 격상되며 관제 문화권인 여러 나라에서 신앙의 대상으로 우뚝 서게 된 것이지요. 관우는 자신의 말처럼 그 이름이 역사에 길이 남았습니다.
어떠한 유혹 앞에서도 변하지 않는 의리,
불의에 항거할 줄 아는 용기, 목숨을 걸고라도 은혜에 보답하는 마음,
위태로운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당당함.
관우 같은 사람을 떠올리면 기분이 좋아집니다.
그런 사람이 옆에 있는 것을 생각만 해도 무척 든든할 거 같습니다.
반대로 여포 같은 배신자를 생각하면 유쾌해지지 않지요.
우리 시대, 우리가 마음 깊이 원하고 그리워하는 사람은 관우 같은 사람이 아닐까 싶습니다.
관우를 보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어떤 것이 옳은 길인가? 다시 한 번 돌아보게 됩니다.
<관우의 의리론>(왜 지금 관우를 다시 봐야 하는가)(나채훈 | 보아스)을 참조로 정리하였습니다.
p.s 우리나라에도 관우의 위패를 모신 사당인 관제묘(關帝廟)가 있다는 걸 아시나요?
서울시 종로구 숭인동에 위치한 ‘동묘(동관왕묘(東關王廟), 서울의 동쪽에 있는 관왕묘라는 뜻)’도 그중 하나인데요.
현존하는 관왕묘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크고 현상 보존이 잘돼 있는 건축 유적이랍니다.
최근(2014.7.3) 서울시는 동관왕묘 내 유물 37건을 서울시 유형문화재로 지정한다고 고시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