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기준 버리고 상대 입장 되면, 가족 갈등 해결
최정인 / 직장인
결혼 13년째 되던 해였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하루하루를 술로 보내시는 아버지, 어려운 형편에 동생의 빚까지 갚아줘야 하는 부담감 등으로 힘든 시기를 보내야 했던 최정인씨 부부. 다툼이 많아지고 서로가 멀어지기만 할 때 다행히 아내가 먼저 마음수련을 하게 되고, 아내의 변화를 보고 남편 최정인씨도 마음수련을 하게 되었다 한다. 마음을 비우며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보면서, 가족 갈등도 저절로 풀리게 되었다는 최정인씨 이야기이다.
스트레스 쌓인 남편, 화병 걸린 아내
어머니가 암 투병을 하다 우리 결혼식도 보지 못하고 돌아가신 뒤 아버지는 하루하루를 술로 보내셨다. 아버지는 농사를 지으셨는데 빚만 남은 농사였고 생활비, 농자금, 마이너스 대출 등 빚을 내어 쓰시고는 감당 못하셨다. 동생마저 은행 빚을 갚지 않아 우리 부부가 대신 갚아줘야 했다. 돈이 모일 새가 없었다.
한 달에 두 번, 쉬는 날이면 아내는 여행도 가고 영화도 보고 싶어 했지만 나는 당연한 도리라며 무조건 시골 아버지 댁에 내려갔다. 몇 년 후 동생이 부친의 전답을 담보로 재산을 다 날리게 되고, 지내실 곳도 없게 되자 장남인 내가 포항으로 모셔오게 되었다.
아버지는 아무것도 안 하고 누워만 계셨다. 씻는 것도 싫어할 정도로 무기력한 아버지를 아내는 이해하지 못했다. 당시 우리는 조그마한 통닭집을 하고 있었는데, 가게에 할아버지가 누워 계시니까 오던 손님도 점점 끊어졌다. 방 한 칸과 다락방밖에 없는 곳에서 다섯 식구가 지내다 결국 가게를 접었다.
아내는 직장생활을 하면서 아이들도 돌봐야 하는 데다 아버지로 인한 스트레스가 화병이 되어 있었다. 험담만 늘어놓는 짜증 섞인 아내의 불평이 내 귀에도 거슬렸다. 나도 아버지의 무기력한 모습이 싫었고, 가족 빚까지 떠안고 있으니 당연하다 싶었지만 소심하고 말수가 적어 아내를 다독여주지 못했다.
아내는 애들한테 화풀이를 했다. 나는 듣다 못해 “그것도 이해 못 하나? 부모님인데 어쩔 수 없잖아!”라며 짜증을 내곤 했다. 아내와 다툼이 잦아지면서 사이가 멀어졌다. 화를 못 참으면 “나도 같이 안 산다” 하고는 후회하기도 했다.
‘그동안 내가 잘못했어’ 마음수련한 아내의 첫마디
보다 못한 큰 누나가 몇 개월 간 아버지를 모시겠다고 했다. 마침 나도 3개월 간 경기도에서 근무하게 되었을 때인데, 아내가 마음수련을 한다고 했지만 나는 별로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런데 근무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니 아내가 달라져 있었다.
어느 날 ‘내가 잘못했다’고 문자가 와 놀라서 아이들에게 전화해 ‘엄마 술 먹었냐?’ 묻기도 했다. 청소 좀 해라, 빨래 널어라…. 끊임없이 잔소리를 하던 아내였는데, 조용했다. 말로 달달 볶던 것도, 아버지 들으라고 애들을 혼내던 것도 없어졌다.
수련 후 뭔가 맺힌 것같이 답답했던 가슴이 후련해졌다는 아내는 “아이들한테도 할아버지가 계시는 것만으로도 든든한데 그 감사함을 모르고 살았다”며 이제는 여생을 원하시는 대로 살게 해드리고 싶다고 하여 나를 놀라게 했다. 배우자를 잃고 평생 해온 농사도 접어야 했던 아버지가 얼마나 절망했는지 알 것 같다고도 했다.
삶에서 탈출구가 필요했는데 아무도 도와주지 않으니 술에 의지해서 사실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또 나에게도 자기 불평 들어주랴, 아버님 설득하랴, 중간에서 힘들게 해 참으로 미안하다고 하였다.
아버지에 대한 짐조차 아내에게 떠넘기던 나의 잘못 깨달아
나는 마음수련이 대체 어떤 건가 궁금했다. 마침 시간도 있고 하여 수련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렇게 나는 나의 내면을 돌아보게 되었다. 돌아가신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많았다. 항상 술만 마시면 어머니가 보고 싶고 생전에 못해드렸던 것들이 떠오르면서 누나한테 전화해서 넋두리를 하곤 했다. 어렸을 때 아버지가 어머니를 홀대하는 모습을 보고 자라서 어머니가 항상 불쌍했다. 늘 아버지를 신경질적으로 대했다.
나도 아버지께 잘 못하면서 아내한테 떠넘기고 있었다. 아내가 맞추는 게 당연하다고 여겼는데 아내 입장이 되어보니 정말 힘들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장 편안한 대화 상대가 나인데 이야기 하나 못 들어주는 남편이었다. 왜 난 그런 것 하나도 이해를 못 해줬을까, 얼마나 힘들었을까…. 죄스럽고 미안한 마음이 끝도 없었다.
가정 불화의 원인은 내 탓이었다. 중간에서 조율을 못 했기 때문이다. 아내에게 내 기준에 맞추라고만 했다. 어릴 때 어머니를 대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며 ‘나는 절대 안 그래야지’ 했는데, 그 행동을 똑같이 내가 하고 있었다.
내 기준 버리고 상대 입장 되어보니, 모든 갈등 자연스럽게 해결 돼
한 달간 논산 메인센터에서 수련을 하고 집으로 돌아갈 때 쯤 아버지도 다시 모셔오게 되었는데 가족을 대하는 내 행동이 달라져 있었다. 퇴근하고 집에 오면 아버지 식사며 하루 생활에 대해 관심 있게 물어보곤 했다. 집에 왔는데 밥이 없으면 전에는 짜증부터 냈지만 요즘은 내가 식사를 차려 드린다.
아내가 힘들어할 때면 “내가 미안하다”고, “지금도 잘하고 있지만 조금만 더 신경 써 달라”고 마음 상하지 않게 이야기하니 아내도 금방 풀리고 집안 분위기도 좋아졌다. 아버지를 대하는 나의 말투도 바뀌었다. 예전에는 퉁명스러웠지만 요즘에는 “날씨도 따뜻한데 좀 씻으시겠어요? 저랑 이발하러 가시면 어때요” 하며 다정하게 말이 나온다. 청소년 캠프에 다녀온 큰애는 동생과 할아버지 밥을 직접 차려 드릴 만큼 의젓해졌다.
아내와 아버지 사이에서 지혜롭게 하려면 무엇보다 상대 입장이 되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지금은 양쪽 모두 이해가 된다. 내 기준과 고집을 버려야 상대가 보이고 상대 입장이 되는 것 같다. 그러면 갈등은 자연스럽게 해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