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툼 없고 서로 배려하는 따뜻한 군대문화
정환철 / 직업군인
화, 다스리고 싶었지만 방법 못 찾아
몇 년 전부터 육군에서 가장 강조하는 행동 지침이 상호 존중과 배려다. 이는 즉, 실천이 잘 안된다는 것을 반증한다. 군대는 좋은 장비와 강도 높은 훈련에 앞서 정신력이 중요하다. 내가 먼저 살아야 하고, 나만 잘돼야 한다는 마음에서는 강한 정신이 나오기 어렵다. 자신보다도 군 전체의 목표 달성을 중시하면서 자신을 희생하려는 마음일 때라야 가능한 것이다.
규칙적인 군 생활이 좋아 직업군인의 길을 선택했다. 대학 졸업 후 86년 임관되어 전방 부대에 소대장으로 처음 부임하였다. 오랫동안 근무하다 보니 군대도 일반 직장과 다를 바가 없었다. 상급자, 동료, 부하 등 대인관계가 원만해야 하는데 나는 그러질 못했다.
세미나 때 발표할 보고서를 준비하면 남들은 1시간 걸리는 데 비해 나는 3~4시간 꼼꼼하게 준비한다고 했지만 주위의 평가는 냉랭했다. 그런 경험이 반복되면서 자격지심에 빠졌고, 동료들 간에도 마음 터놓고 이야기를 하지 못했다. 한편으로 상대가 나보다 잘났다 싶으면 속으로 무시했다. 불같은 성격도 문제였다. 남들이 내 생각대로 따르지 않으면 버럭 화부터 냈다.
나보다 어리다는 이유로 하급자들에겐 더 심하게 대했다. 순간순간 화를 낼 때마다 자괴감이 들었다. 부하들한테 정신교육을 할 때는 화내지 말고 사이좋게 지내라 했건만 정작 나는 화를 다스리지 못했던 것이다. 화를 고치기 위해 4년 넘게 명상을 해왔지만, 달라진 건 없었다.
오직 내 자존심만을 위해 살았던 나를 돌아보다
아내의 권유로 마음수련을 하게 되면서 비로소 화의 원인을 알 수 있었다. 어린 시절, 어머니가 꾸중하실 때 내 마음이 잘 표현되지 않는다 싶으면 울거나 떼쓰고 화냈던 것처럼, 상대와 대화를 하다가 논리적으로 이야기가 안 풀린다 싶으면 내 주장이 맞다는 걸 강조하기 위해 버럭 화를 내고 있었다.
오직 내 자존심을 위해서만 살고 있었다. 마음수련을 하며 그런 마음을 버리니 의식이 커지면서 군이라는 조직에 속한 내 모습이 보였다. 내가 존재할 수 있었던 건 하급자들이 있어서 가능했다. 내가 군림하라고 하부 조직이 있는 게 아니었다. ‘간부’는 조직 구성원들을 위해 존재한다는 걸 비로소 깨달을 수 있었다. 그러자 내가 상급자에게 상명하복하듯이, 부하들도 내가 지시하는 대로 따라야 한다고 여겼던 것이 참회가 되었다. 병사들 각자가 존귀한 인격체인데, 참으로 미안했다.
수련 후, 나는 병사들 간의 폭행 및 구타로 대대장이 보직 해임된 대대에 후임 대대장으로 배치되었다. 병영 분위기가 냉랭했다. 우선 병사들의 이야기를 많이 들으며 대화 시간을 많이 가졌다.
통신 부대여서 병사들에게 요구 사항을 직접 이메일로 보내도록 조치했다. 개별 답변도 보내주고, 게시판에 조치 사항도 공지했다. 점차 병사들이 간부를 신임하게 되고 가까워질 수 있었다. 부대 분위기도 좋아지기 시작했다.
병사들 간의 사소한 다툼도 없었다. 간혹 운전병이 늦게 복귀하느라 끼니를 거를 때면 동료들이 식은 밥이라도 정성껏 챙겨주기도 했다. 연말에는 최우수 부대로 선정되기도 했다.
솔선수범이 무엇인지 마음으로 깨닫게 돼
어느 날 신병이 새로 자대 배치를 받아 대대장인 나를 면담하기 위해 찾아왔는데, 주눅이 들었는지 내 얼굴을 잘 쳐다보질 못했다. 좀 이상하다 싶어 병사의 아버지께 전화를 드렸더니 초등학교 때 아버지 바지를 뒤져 돈을 훔치다가 발각되어 엄청 혼을 냈다고 한다. 그 이후로 아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다 보니 아이가 외톨이처럼 지내고 대인관계가 좋지 않다고 했다.
나는 쉬는 시간을 이용해 병사를 부대 근처 마음수련원에서 1~2시간 수련을 하도록 했다. 한 달 뒤 병사는 “전에는 아버지의 ‘아’자만 들어도 사시나무 떨듯이 떨었는데 이젠 마음이 후련해지고 아버지에 대한 감정이 없다”며 참 신기하다고 했다.
전에는 싸우지 마라, 후임들이 잘못해도 감싸줘라, 교과서적인 이야기만 했을 뿐 병사의 마음을 헤아리며 배려하지 못했었다. 또 부대 내에서 간혹 사건 사고가 발생하기라도 하면 그야말로 하늘이 노래지기 일쑤였다. 당시엔 사건, 사후 조치보다 내가 당해야 할 사후 책임 문제에만 연연했는데, 지금은 나 자신의 안위는 전혀 없이 오로지 근본적인 사후 조치를 하게 되었다.
장교 교육 과정 중 지휘통솔 과목의 행동 지침으로 ‘솔선수범’이 나온다. 그 말을 마음으로 깨닫게 된 것이다. 전엔 지시나 확인만 했지만, 지금은 현장에 가서 병사들과 같이 삽질하고 벽돌도 나른다.
병사들의 인성교육 위해서라도 간부 먼저 마음 닦아 의식 키워야 할 듯
예전에는 아침에 군화 끈을 맬 때마다 출근하기가 싫었다. 군대는 상명하복이 중요한 조직인데, 상급자와 부하들의 이해관계가 다르다 보니 중간자 입장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난처할 때가 많았다. 그런데 지금은 상급자가 지시하면 일단 수용을 하고, 그 이유를 병사들에게 자세히 설명해준다. 상대 입장이 되어 상급자가 왜 그런 지시를 할 수밖에 없는지 병사들이 알아듣게 설명할 수 있었고, 공감을 끌어낼 수 있었다. 병사들도 불만 없이 잘 따라주었다. 당연히 일의 효율성도 높아졌다.
직업군인이다 보니 새로운 임무지로 옮겨 다닐 때마다 ‘내가 과연 잘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많았다. 하지만 수련 후 마음 편하게 대인관계를 잘할 수 있게 되었고, 바뀐 환경에도 빠르게 적응하고 있다. 선입견이 없어지니까 표정만 봐도 마음으로 알고 먼저 해주게 된다.
요즘 어린 병사들은 자기밖에 모르는 경향이 있다. 집에서 혼자 애지중지 자라다 보니 옆에 아픈 병사가 있어도 관심이 없다. 그런 병사들의 인성 교육을 위해서는 간부들이 먼저 마음을 닦아 의식을 키워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