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들에게 상처줬던 나를 버리고
이금성 / 공인회계사
남들이 성공했다고 부러워하기 시작한 40대 초반, 나는 몸도 마음도 즐거운 게 없었다. 공인회계사로서 돈도 좀 벌었고, 하고 싶은 것도 이것저것 대충 해보인지 별로 새롭게 하고 싶은 것도 없었다.
가족은 부끄럽고 직원은 마음에 안 들고, 사는 게 답답
딸 다섯 중 셋째 딸인 나는 가족들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버지는 무능력해서 불만이었고, 어머니는 생계를 꾸려야 하니 집에 계시는 시간이 적어 집안이 허술해 아쉬움이 많았다. 언니는 동생들을 돌보지 않고 자기 하고 싶은 대로 사는 것 같아 함부로 대했고, 동생인 내가 언니를 가르치기에 바빴다. 하물며 동생들은 내가 돌보아야 된다고 생각하니 더욱더 가르치려 했다. 공부를 열심히 하고 집안일도 열심히 하고, 바르게 잘 살아보자고 혼자 외치다가 내 마음대로 되지 않자 차라리 체념하게 되었다. 모든 것이 실망스러웠고 그런 내 가족이 부끄럽고 원망스러웠다.
이런 마음은 직장에서도 그대로 이어졌다. 일을 잘하는 직원도 있었지만 지각을 하고 일을 잘 못하는 직원은 눈엣가시처럼 미웠다. 특히 일이 잘못되면 돈으로 배상을 해야 하는 일의 특성상 집에 있어도 일을 잘못하지나 않는지 늘 신경이 쓰였고 빨리 일을 그만두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일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살다 보니 아침에 눈을 뜨면 오늘은 어떻게 사나? 하는 막연함에 하루하루가 힘에 겨웠다. 겨우 이렇게 사는 것이 다인가 생각하니 한심하고 가슴이 아팠다. 결혼도 할 수 없었다. 결혼을 하면 싫은 것도 맞춰가며 살아야 하니 그것도 자신이 없었다. 그러면서도 미련은 버리지 못하는 못난 사람이 바로 나였다.
정작 부끄러운 사람은 나였음 알고 나니, 모두 고마울 뿐
그러던 중 마음수련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수련을 시작하였다. 조금은 못났지만 그래도 잘 살아왔다고 생각했던 삶을 되돌아보며, 다시는 생각하고 싶지도 않은 부끄러운 삶이었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부끄러운 나를 버릴 수 있다고 생각하니, 아침에 눈을 뜨면 마음수련을 하러 갈 수 있다는 것에 감사했다. 가족을 돌보아야 한다는 부담감도, 바르게 잘 살아야 한다는 나의 틀도 버리니, 늘 피곤하던 몸도 많이 건강해졌고 마음도 편안해졌다. 삶에 희망이라고는 없던 내가 희망이라는 것도 처음으로 가지게 되었다.
그렇게 못마땅하게 생각해서 늘 가르치려고 했던 동생에게도 되레 배우고 있다. 시끄럽기만 하고 별로 하는 것이 없는 나에 비해 동생은 마음수련 후 조용하고 꾸준하게 남을 위해 살고 있는 것이다. 형제와 어머니를 무시하면서 서로의 가슴에 남긴 상처가 다 없어진 것이 가장 큰 변화다. 나같이 못되고 못난 딸을, 못난 동생을, 못난 언니를 믿고 마음수련을 시작해준 어머니와 가족들에게도 진심으로 감사하다.
또 직원들에게는 내가 잔소리를 할 자격이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저 묵묵하게 일하는 직원들을 몰라보고, 나만 열심히 일한다고 착각했던 자신을 돌아보니 그저 고맙기만 하다. 직원들은 내가 구질한 일까지 해줘서 고맙다고 하면서 스스로 일을 열심히 한다. 직원들의 덕을 많이 보니 더 잘해주고 싶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