틀 센 경상도 남자가 아내를 존경하기까지
오점술 / 농업
아내와 함께 마음수련 논산 메인센터에서 수련을 할 때였다. 점심을 먹기 위해 식당 앞에 줄을 섰는데, 아내가 내 옆으로 오더니 확 끌어안는 게 아닌가. 깜짝 놀랐다. 그건 아주 놀라운 일이었다. 우리 부부는 마음을 표현하는 데 아주 서툰 사람들이었고, 특히 아내는 평소 남편이 좋다거나 하는 표현을 전혀 하는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놀라는 나에게 아내는 “놓아버리니까 이렇게 편하고 좋은 것을” 하며 방긋 웃었다.
고함부터 지르는 내 성격, 확 고쳐주는 데 어디 없을까?
내가 28세, 아내가 23세일 때 우리는 중매로 만나 결혼했다. 나는 3남 1녀의 맏이고 아내도 7남매의 맏이였는데, 30년 넘게 살면서 우리 부부는 한 번도 크게 싸운 적이 없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아내가 무조건 참은 덕분이었다.
아내는 맏며느리로서 부모님을 모시고 살아야 했는데 시집살이가 심한 편이었다. 어머니가 고함도 많이 지르시고 억울하게 한 경우도 많아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을 텐데도 아내는 무던히도 받아주었고 혼자 묻어두었다. 나한테 하소연을 할 수도 없었다. 말해봤자 나 역시 소리부터 지를 것이고 일이 더 커질 거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내 나이 대의 사람들이 거의 그렇겠지만 특히나 경상도 사람들은 더 무뚝뚝하다. 거기다 장남으로 자라서인지 내 주장이 유난히 강했던 나는 내 뜻대로 안 되면 불안해 했다. 평소 사람들을 대할 때도 나도 모르게 담아둔 말을 확 해 버린다거나, 한마디로 잘라버리는 식이라 나를 불편해하는 사람이 많았다.
나 역시 그런 나 자신에 대해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하지만 가장 큰 피해자는 아내였다. 나이가 들면 더 심해지겠구나 싶어 내 마음을 고쳐보려고 노력했다. 술을 먹으면 자꾸 술로 화를 풀려고 할까 봐 술도 끊고 담배도 끊어봤지만 고쳐지지가 않았다. 어디 이런 성격을 좀 확 고쳐주는 데가 없을까 찾아다니다 마음수련을 하게 되었다.
‘곽선생, 고맙네’ 아내 부르는 호칭부터 바꿔
수련 이틀째였다. 뭔가 가슴에서 맺혀 있던 돌 뭉치 같은 게 빠져나가면서 마음이 시원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가난한 집안의 장남이라는 책임감, 부담, 그런 것들이 화로 쌓여 있었다는 걸 알았다. 이런 것들로 내 마음이 막혀 있었구나. 모든 것이 내가 잘못이구나 하는 깨달음이 왔고, 특히 아내 생각이 많이 났다.
없는 집에 시집와서 고생만 하며 살았던 아내가 불쌍했다. 그런데도 나는 위로는커녕 내 맘대로 안 되면 고함부터 질렀다. 시부모 때문에 아무리 힘들어도 말 한마디 안 하고 참는 사람이었는데, 그런 아내에게 나는 이리도 애를 먹였구나 싶어서 사흘을 울었다. 집으로 돌아와 “당신한테 잘못했다”고 사과했고 우리는 함께 눈물을 흘렸다.
나는 아내를 부르는 호칭부터 바꾸었다. 예전에는 ‘자야, 섭아’ 하고 아이들 이름으로 부르고 휘파람을 불거나, 밭에서 일할 땐 호루라기를 불기도 했다. 그런데 마음수련은 나를 비우고 상대방을 존중하게 해주는 수련이었다. 나는 아내를 ‘곽선생’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곽선생, 식사하자. 곽선생, 맛있게 잘 먹었네. 곽선생 고맙네…” 이제 누가 있어도 상관없이 ‘곽선생’이라 부른다.
부부 사이 좋아지니, 토마토 농사도 더 잘돼
내가 원했던 대로 성격도 확 바뀌었다. 사랑 표현은커녕 우스갯소리조차 할 줄 몰랐는데, 요즘은 “사랑해”라는 말도 하고, 예전 같으면 아내가 좀 오래 자리를 비우게 되면 늘 밥을 따로 챙겨놓고 나가게 했는데, 요새는 내가 차려 먹을 테니 그냥 가라고 하고, 빨래도 한다. 예전에는 내 뜻대로 지시를 했다면 지금은 아내가 하자는 대로 따라가는 편이다. 내가 수련을 하고 1년 뒤쯤 아내도 수련을 했는데, 그 뒤로는 대화도 더 많이 하게 되었다.
수련을 하면서 아내가 정말 소중하구나 하는 것을 느꼈다. 전에는 그냥 마누라지, 그렇게만 생각했는데, 아내가 최고고, 아내야말로 위대한 사람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러니 자연히 아내를 높여주게 되고, 아내의 뜻을 따르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당연히 아내도 내 의견을 물어보고 서로 상의를 해서 해나가게 된다. 상대방을 높여주면 문제가 생길 게 없는 것이다.
우리 부부는 35년째 토마토 농사를 짓고 있다. 토마토 농사는 부부간에 의가 좋아야 잘되는 것 같다. 세심하게 신경을 쓸 것이 많은데, 부부간에 마음이 맞아야 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비록 식물이지만 토마토도 부부간의 대화를 다 듣고 그 분위기를 느낀다. 우리 마음이 농작물에도 영향을 주었는지 부부가 함께 마음수련을 하고부터는 병도 안 들고 농사도 더 잘되고 있다. 사랑이라는 것은 즐겁게 지내고 서로 웃고, 상대방을 항상 좋게 대하는 것 아닌가. 마음수련을 하니 저절로 그런 마음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