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가 남겨주신 소중한 선물
김현대 / KBS 보도본부 팀장
어렸을 때 아버님의 사업 실패로 인해 경제적으로는 부족했지만 워낙 부지런하신 어머니의 영향으로 그리 어렵지 않은 생활을 해왔다. 서울에서 괜찮은 대학을 나왔고, 졸업하자마자 모든 사람들이 선호하는 방송국에 입사하였고, 또 괜찮은 여자와 결혼해 건강한 아들과 딸아이를 두어 남부럽지 않은 생활을 해왔다고 자부심을 갖고 살아왔다. 하지만 이런 나에게도 인생의 시련이 왔다.
어머니 갑자기 돌아가신 후 삶의 의미 못 찾아
2001년도 설날 연휴를 앞두고 어머님이 복부 통증으로 입원하신 지 사흘도 채 안 되어 갑자기 돌아가신 것이다. 평상시 몸이 약하신 편이었지만 뚜렷한 병세는 없는 분이었다. 당시 전북 군산에 근무하던 나는 설 연휴를 위해 서울 처갓집에 미리 다녀오는 중이어서 임종도 지키지 못했다. 날벼락이 떨어진다는 것이 이런 것인가.
아들 5형제를 위해 고생만 하시다가 이제는 편안히 사시는가 했더니 그리 급히 저 하늘로 가셨나 한탄만 할 뿐이었다. 어머님이 돌아가신 뒤로는 삶의 의미가 없어졌다. 일할 맛도 안 나고 퇴근 후 술만 먹으면 노래방에 가 눈물 속에 지냈다.
그러던 중 우연히 신문에 난 마음수련 관련 기사를 보게 되었다. 사람의 본성을 알게 된다는 문구가 눈에 확 띄었다. 가끔 인간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에 대해 고민해 보기도 했지만, 어머님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인해 정신적 탈출구가 필요했던 것이다. 그해 여름 나는 과감히 2주간의 휴가를 내어 메인센터에 들어갔다.
처음 2-3일간은 힘들었던 것 같았다. 과연 나의 본성을 깨우칠 수 있을까 하는 의혹과 아무 말 없이 앉아서 하루 내내 도움님의 안내에 따라 ‘나’를 버린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사흘 정도 지나면서 지나온 삶을 하나하나 버리다 보니 점점 머리가 개운해지면서 가슴도 넓어지는 기분이었다.
우리 모두의 본래 깨친 후, 슬픔도 아픔도 사라져
어렸을 때 달리기 잘한다고 친구들에게 우쭐대던 나, 어머니가 시장에서 야채장사를 하실 때 내 딴에는 심부름을 잘하니 효자라고 생각했던 나, 고등학교 때는 공부를 잘하여 공부 못하는 반 친구들을 속으로 우습게 보던 나, 경제적으로 무능력한 아버지를 두었다고 불평불만만 키워왔던 나, 글씨를 못 쓴다는 열등감에 빠져 대학교 시험 볼 때마다 시험시간이 두려웠던 나,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면 괜히 남들이 나를 쳐다보지 않나 하고 구석자리만 찾아다녔던 나, 여학생하고 단체 미팅 때 수줍기만 하여 허공만 보고 한숨 쉬던 나, 회사 회식 때 술잔을 받으면서도 손이 떨리지 않을까 걱정하는 대인공포증을 가진 나, 결혼 후 아내를 어머니와 비교하면서 핀잔하던 나, 남들은 부모 조상을 잘 만나 적당히 일해도 먹고사는 것에 지장 없는데, 내 처지는 왜 이런가 하고 세상 한탄을 했던 나….
수만 가지 모습의 내가 있었다. 세상은 그냥 그대로 있는데 나는 살아오면서 온갖 생각을 머릿속에 저장하여 놓고 그것에 얽매여 살아왔던 것이다. 2주 동안의 마음수련은 지나간 삶을 되돌아보는 충분한 기회를 만들어주었으며 그동안 얼마나 이기적이면서 바보 같은 생활을 해왔는지에 대해 철저히 반성하는 계기가 되었다.
특히 돌아가신 어머니의 모습을 계속해서 버리다 보니 어느 순간 어머니의 모습을 떠올려도 슬픔과 아픔이 없었다. 그렇게 하염없는 눈물을 흘리며 마음을 버리고 버리다 보니 나는 나의 진정한 모습을 되찾게 되었다. 나는 비록 ‘김현대’라는 이름의 육신을 갖고 이 세상에 나왔지만, 본래는 ‘우주’라는 것을 확연히 깨닫게 된 것이다. 진정한 행복과 자유가 무엇인지도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