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 다 잘 살자는 것, 사업에 자신감이 붙다
박철수 / 자영업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일식집을 경영하는 친척집에서 주방보조를 한 것이 인연이 되어 지금까지 30년 가까이 이 분야에서 일하고 있다. 한눈팔지 않고 꾸준히 한 덕분으로 중년에 접어들었을 때는 서울 중심가에 대규모의 고급 일식집을 운영했다. 그런데 사업이 확장일로를 달릴 때 건물주가 리모델링을 이유로 가게를 비워 달라 해서 이전하게 되었고 이 일은 나에게 적잖은 타격을 주었다.
세상살이가 다 불만, 느는 건 술 주정뿐
예전에 비하면 규모도 작고 내가 보기에는 가게 터도 좋지 않았다. 게다가 경기 불황마저 겹쳤다. 세상일이 내 뜻과 맞지 않았고 모든 것이 불만이었다. 하루는 만취한 상태에서 죽겠다고 건물에서 뛰어내려 온몸이 상처투성이가 된 적도 있다.
아내가 마음고생을 많이 했다. 고등학교에 막 입학한 아들녀석도 내 술주정을 받아줘야 했다. 당시 아들녀석의 담임이 우리 가게 단골이었는데 연배가 비슷해서 술잔도 함께 나누며 지내던 사이였다. 하루는 신세타령만 끝없이 하는 내가 딱했는지 나를 끌고 가다시피한 곳이 바로 마음수련 지역센터였다.
영 내키지 않았지만 권유에 못 이겨 등록을 하고 나니 도움이 수련 원리와 방법을 설명해 줬다. 솔직히 수련비도 아깝고 해서 시키는 대로 한 달만 하고 말아야지 했다. 하루에 3번 자기를 반성할 수 있는 사람이 그래도 낫다는데,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을 하며 수련을 시작했다. 나름 열심히 그동안 살아온 삶을 떠올려 버리기를 며칠째였다.
아! 하는 탄성과 함께 마음속에서부터 확인되는 사실들이 있었다. 내가 만들어놓은 마음속에 갇혀서 살기에 이렇게 힘들 수밖에 없는 것이었구나, 나라는 사람은 가족에게 힘들게만 했던 존재구나, 자기중심적인 사고와 독선적인 삶의 중심에 내가 버티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순간 나도 모르는 눈물이 하염없이 쏟아졌다.
손님조차 돈 있는 사람, 없는 사람으로 분류했던 속좁은 나
한참을 울고 나니, 무엇인가 후련하면서도 맑은 기운이 감싸오는 걸 느꼈다. 남을 탓하고 내 잘못을 합리화시키면서 술주정으로 가족을 힘들게 했던 내 자신이 그렇게 미웠고 한없이 부끄러웠다. 마음을 버리고 닦을수록 내 마음 깊숙한 곳에 도사리고 있는 열등감도 잘 볼 수 있었다.
배운 것 없고, 부모님한테 물려받은 재산 없이 열심히 잘 살았다는 생각 뒤에는 두 가지 마음이 버티고 있었다. 가게가 잘될 때는 좋은 조건에서 자란 친구들에게 보란 듯이 으스댔지만 침체기에 들어서자 물질적으로 뒷받침해주지 못한 부모님이 원망스러웠고 세상일이 못마땅했다. 우월감과 열등감을 열심히 버렸다.
또 이런 일들도 떠올랐다. 그 옛날, 간단한 기술 하나를 배우려면 선배들에게 맞고, 욕을 들어가며 버텨야 했다. 선배한테 주방 한 켠에서 얻어맞았던 사연, 그리고 내가 선배가 되었을 때 후배들을 혹독하게 괴롭혔던 사연을 하나씩 하나씩 버려나갔다.
가게에 오던 손님들을 돈이 있는 사람, 없는 사람으로 분류해 가며 바라보던 나도 훤히 보였다. 이 손님은 짠돌이, 저 손님은 후한 사람. 모두가 내가 만든 마음들이었다. 과거에 내가 찍었던 마음의 사진들을 하나씩 버리자 생활습관이 하나씩 바뀌기 시작했다.
다 같이 다 잘 사는 방법 생각하는, 큰 마음으로 바뀌어 감사
신세타령이나 하려고 마시던 술이 이제는 친지, 친구들과 편안하고 즐거운 분위기에서 마시니 여유로움이 느껴져 즐겁다. 이제는 아내와 함께 소박한 안주를 마주 놓고 정겨운 얘기를 나누며 한잔씩 하곤 한다.
또, 실력 있는 주방장에만 집착하던 마음들을 버리고, 후배들을 양성하는 데 힘을 쓴다. 예전에는 욕을 입에 달고 살았다면 지금은 칭찬하는 데 좀 더 에너지를 쏟는다. 같이 잘 살자고 사는 삶인데 돈 버는 것에 혈안이 돼 주위 사람 한 번 돌아보지 못한 내가 부끄러웠다.
그리고 사업에 자신감이 생겼다. 내가 전체를 보고 이끌어 갈 수 있는 그릇이 되었다는 걸 알 수 있다. 한순간에 잘되는 일이 없듯이 돈이 요행수로 벌렸더라도 그것을 관리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면 하늘은 한 치의 오차 없이 거둬간다는 걸 알았다. 돈 좀 벌었다고 건방 떨던 나는 그 돈을 쓸 능력이 없어 결국 잃지 않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