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민하고 이중적이던 아이였죠
성현우 / 중학생
초등학교에 들어갔을 때 난 모범생이라 불렸고, 주위에서도 항상 칭찬을 받았다. 그러다가 3학년이 되자 슬슬 교만함을 갖더니 감사함을 모르는 아이가 되어가기 시작했다. 그 당시엔 몰랐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나 때문에 울고 힘들어했던 아이들도 꽤 많이 있었다. 친구와 하루에 한 번씩은 치고받고 싸우고, 친구의 약점을 잡아 놀리기도 했다. 열 살 남짓한 나이였기 때문에 나는 내가 무엇이 잘못됐는지 알지 못했다.
비뚤어진 아이 되어버린 나 때문에 눈물 흘리던 엄마
어른들 앞에서는 모범생이었지만, 친구들에게는 못되게 굴었으니 난 이중적이었다. 엄마는 나 때문에 우시기도 했다. 너무 삐뚤어져서 잡아줄 수 없을 지경이 되기 직전, 마음수련을 알게 되었다. 열 살 때였다. 청소년 마음수련 캠프에서 수련을 시작해보니 나는 참 이상한 아이였다.
마음속으로 자기가 혐오한다고 생각한 사람이 곧 나 자신이었다. 넌 왜 이렇게 예민하냐고, 왜 이렇게 짜증이 많냐고, 왜 배려심이 이렇게 없냐고, 친구들에게 말하고 다녔지만 실은 내가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 또 내가 그동안 이런 행동들을 왜 해왔는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동안 나는 항상 주위 사람들에게 칭찬받으려 했고 또 항상 받아왔었다. 주위 사람들은 내게 거의가 친절했었다. 그래서 그 호의를 잃을까 두려워 언제나 내 진심은 꼭꼭 숨겨두어야 했다. 그러다 보니 언제나 안에는 뭔가 억눌려 있었고, 그것은 굳이 가식을 떨 필요가 없는 친구들에게 표출되었던 것이다.
난 특히 내가 칭찬받았던 기억, 내가 칭찬 받으려고 했던 행동들, 예를 들면 아이답지 않게 선물을 사양하고 친구들 앞에서 아는 체했던 기억들을 버렸다. 버리는 도중에 부끄러워졌고 이렇게 못난 나에게도 친구라고 친절히 대해주던 반 아이들에게 미안해졌다. 이런 ‘마음의 사진’들 때문에 자연스럽게 그런 성격이 만들어지고 주위 사람들을 괴롭게 한 거였다.
쉽게 짜증 내기보다 먼저 나를 돌아볼 줄 알게 되었어요
그런데 좀 더 수련을 해보니 이유는 그것뿐이 아니었다. 어렸을 때부터 약했던 건강 탓도 있었다. 몸이 아팠던 기억들은, 조금만 힘들어도 주위 사람에게 화를 내는 예민한 사람으로 만들어갔다. 아무리 몸이 힘들어도 웃는 얼굴로 세상을 대하는 사람들도 많은데…. 또 나는 주위 사람들에게 감사할 줄도 모른다는 것을 깨달았다. 반찬 투정 같은 것을 포함해서 주위 사람들에게 하는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같은 말들도 모두 잘 보이기 위한 형식이었지 진심은 아니었던 것이다.
‘감사할 줄 모르는 나’가 생겨난 것은 가족과 주변 사람들에게 너무 받아만 왔기 때문인 것도 있었다. 나는 이것도 버렸다.
위에서 말한 것들을 내가 아직도 가지고 있다면, 아마 나는 주변 사람들에게 혐오의 대상일 것이다. 다행히 지금의 나는 그렇지 않다. 물론 사춘기라 그런지 나도 모르게 짜증을 내기도 하지만 예전보다 쉽게 짜증을 내거나 하지 않고 먼저 나를 없애본다. 덕분에 요즘은 내가 짜증을 많이 낸다고 말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가장 좋아진 점은 가식이 아닌 진짜 내 모습을 주위 어른들에게도 편하게 보여드릴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 덕분에 어른들과의 대화도 더욱 편해졌다. 예전에 통지표에 항상 ‘좀 예민하다’고 쓰셨던 선생님들도 이제는 ‘학교생활을 잘하고 있고 활발하다’고 써주신다. 나는 내가 마음수련을 만나서 바뀐 것에 참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