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만 알던 ‘마녀’ 날개 없는 ‘천사’ 되다
송경옥 / 주부
결혼 3개월 만에 아기를 갖게 되었다. 마음의 준비가 없던 상태에서 아이가 생겨 몸도 마음도 많이 힘들었다. 아이는 밤낮으로 잠을 자지 않고 시도 때도 없이 울어댔다. 내 삶이 아이 위주로 가면서 육아의 부담은 커져만 갔고, 자유롭고 싶은데 늘 아이를 돌봐야 하는 상황이 힘들었다. 하지만 늘 짜증과 신경질을 낸다고 ‘마녀’라고 부르던 남편이 이젠 “당신은 천사야, 날개는 어디 갔냐”고 할 정도로 나는 바뀌었다.
쇼핑, 여행으로도 해결되지 않았던 짜증과 신경질
허한 마음에 매일 백화점에 가서 쇼핑을 했다. 백화점에서 산 물건은 봉지째 집에 쟁여졌다. 답답함을 풀기 위해 아이를 데리고 틈만 나면 또래 엄마들과 국내, 해외 여행을 다녔다. 가서는 마음이 탁 트이는 것 같았지만, 그때뿐이었다.
착한 남편도 이유 없이 그냥 싫었다. 이혼하고 싶어서 이혼 사이트에도 가입했다. 워낙 해외 출장이 많아 남들에겐 특별한 날인 어린이날이나 연말에도 남편은 함께하지 못했다. 마치 혼자 아이를 키우는 것 같았다. 그런 남편한테 온갖 짜증, 신경질을 많이 냈고, 남편의 귀가 시간도 갈수록 늦어졌다. 남편은 나를 ‘마녀’라 불렀다.
그러다 마음수련을 하게 되었다. 객관적인 입장에서 내가 너무 잘 보였다. 나는 새침떼기에다 이쁜 척하는 ‘공주’였다. 공주처럼 살아야 하는데 현실은 그게 아니니 힘들었던 거였다. 결혼 전엔 내가 세상의 주인공이었다. 시집가기 전 물 한번 손에 안 묻혔고, 청소, 설거지도 해본 적이 없었다. 핸드백을 들어도 어깨가 무겁다고 징징거렸고, 무거운 짐을 들고 계단을 오를 때면 “이런 거 못해”하면서 화를 냈다.
공주처럼 살아야 하는데, 가족 뒤치다꺼리 하려니 힘들었던 것
그런 내가 결혼을 했으니, 가족들 뒤치다꺼리하면서 항상 손해를 본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남편이 싫은 것도 나만 고생하고 내가 다했다는 마음 때문이었다. 돌아보니 남편은 열심히 일하면서 옆에서 묵묵히 있어줬는데 그걸 몰랐다. 수련하면서 남편한테 문자를 많이 보냈다. 항상 고맙고, 보고 싶다, 미안하다, 잘못했다 하면서.
딸한테도 계모 같았다. 어릴 때 미리 잡아야 한다고 생각해 자주 혼내고 때렸다. 아이가 엄마랑 같이 놀고 싶어 해도 “몰라” 하면서 혼자 놀게 했다. “쟤는 혼자서도 잘 놀아” 했는데 수련 후 알고 보니, 놀아주는 사람이 없어서였다. 나 편하려고 아이 입장에서 함께하지 못했다. 마음이 아팠다.
수련하면서 조금씩 아내, 엄마의 위치를 찾아가는 기분이 들었다. 모든 걸 내 시각대로 보던 것이 쌓아둔 마음을 버리자 남편과 아이를 있는 그대로 볼 수 있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남편을 향한 말투도 변했다. 예전에는 “밥 먹어!” “늦어, 왜?” 하는 명령조였다면 지금은 “맛있는 저녁 해놨으니 일찍 들어와요” 하면서 부드럽게 말한다. 아침에 출근하는 남편한테도 “쓰레기 버려!” 하면서 시켰는데, 지금은 “냄새 나는데 내가 할게” 하면서 직접 한다.
내가 변하자 희한하게 남편도 바뀌었다. 설거지, 청소를 해주고 아이 책가방도 챙겨주었다. 남편의 귀가 시간도 빨라졌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이 집 앞에서 나를 불렀다. 정말 흔치 않은 일이었다. 남편이 “정말 당신 너무 착하고, 우리 가족이 너무 편안해. 당신은 천사야. 날개는 어디 갔니?”라고 칭찬해서 깜짝 놀랐다.
전에 느껴보지 못한 행복, 집에만 있어도 항상 기쁘고 자유로워
아이와의 관계에서도 변화가 생겼다. 전엔 싸우다가 서로 울다 지쳤다. 지금은 책도 읽어주고 자주 놀아준다. 아이가 집에서 뛰면 전엔 “왜 이렇게 뛰어!” 하면서 쥐어박았다면, 지금은 “니가 뛰면 밑의 집 할머니가 올라오실 것 같은데” 하며 잘 설명해준다. 그러면 아이도 알아듣고 금세 조용해진다. 가끔은 편지를 써서 화장대에 놓고 간다. ‘엄마 내가 시끄럽게 해서 미안해. 사랑해.’ 아이는 산만한게 많이 좋아졌고 자주 안긴다.
이제야 가족이 하나가 되는 것 같다. 부부, 자식 관계에서 내가 이만큼 하면 따라와야지 하는 마음이 전혀 없으니까 그냥 해주는 기쁨이 크다.
또 부모님의 감사함을 모르고, 친정집에 가서 신경질 내고 부모님을 괴롭혔던 게 참 많이 죄송했다. 수련 후 마음이 늘 충만해 있다. 원래 한 가지 일도 벅차해하는데 지금은 직장에도 나간다. 뭐든지 할 수 있는 자신감이 생겼기 때문이다. 이젠 무거운 가방도 씩씩하게 잘 든다.
가끔 예전 생각하면 피식, 웃음이 나온다. 지금은 쇼핑도 거의 안 하고, 여행도 잘 안 간다. 집에 있어도 항상 좋기 때문이다. 항상 기쁘고, 자유롭고 감사하다. 전엔 전혀 느껴보지 못한 행복이다. 집이 여행지 같고 일상도 지루하지가 않다.늘 새로운 하루다. 마음을 비우면 모든 게 달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