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이렇게 행복할 수 있구나

임재현 / 현대자동차기술연구소 연구원. 경기도 화성시 남양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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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벌이 하는 부모님을 대신해, 할머니 할아버지의 보살핌 속에 자라며 나는 누구보다도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하나하나 맞춰주시는 할머니 할아버지는 어린 나에게 가장 소중한 분이었고 언제까지나 같이 있고픈 분들이었다.
하지만 유치원에 들어갈 무렵 부모님은 나를 데려 가기로 결정하셨고, 보호자가 바뀌는 그 경험은 나에게는 큰 충격이었다.
먹는 것 하나, 자는 것 하나 다 바뀌어야 했고, 결정적으로 매우 친밀했던 할머니 할아버지가 아닌 데면데면한 친부모와의 생활 자체가 큰 스트레스였다.
어린아이로서는 세상의 전부가 하루아침에 바뀐 셈이었던 것이다.

장래 희망을 ‘사람이 되고 싶다’고 썼던 아이

부모님은 첫아들인 나에게 많은 욕심이 있었다. 특히 교육에 관해서는 다른 아이들에게 뒤처지는 것을 매우 싫어하셨다. 신나게 놀다가 갑자기 공부를 해야 하고, 친구들보다 점수가 높지 않으면 혼내시는 부모님이 좋을 리 없었다. 어린 마음이었지만 부모님을 미워하는 나 자신도 싫었다. 그때부터 근본에 대한 고민이 시작되었던 것 같다. 주위 환경에 따라 바뀌는 내 마음, 나는 왜 이런 고민을 하면서 살아야 하나, 또 이런 고민을 하는 나는 어떤 존재인가가 궁금했다. 그래서인가. 초등학교 6학년 졸업 앨범, 장래 희망을 쓰는 난에 나는 ‘사람이 되고 싶다’라고 적었다. 주위 애들이 놀렸고 선생님도 장난인 줄 아셨지만, 나는 진심으로 내가 누구인지, 왜 이런 마음으로 살아야만 하는지가 궁금해서, 제대로 된 사람이 되고 싶어 적었던 거다.
하지만 그냥 그럴 뿐 나의 생활이 달라지는 건 없었다. 공부 잘하는 학생으로서, 부모로부터 인정받는 것에 위안을 삼으며 열심히 학창시절을 보냈고 또 원하는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정신없이 달려갔다. 덕분에 원하는 대학에 합격했지만 행복하지가 않았다.
왜 살아야 하는지, 나는 어떤 존재인지에 대한 궁금증이 풀리지를 않으니 주위에서 원하고 부모가 원하고 나 또한 원하는 줄 알았던 대학에 들어갔음에도 마음은 오히려 허전했던 것이다.
‘이 삶의 끝은 무엇일까?’
‘이루고자 하는 것을 이뤘음에도 결국 허전한 마음이 가시지 않음은 분명하구나.’
‘앞으로 더 가지는 삶을 산다 해도 이 마음의 끝은 허무함일 것 같다.’
‘결국 이 허함은 내 마음 탓이구나.’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지만 딱히 그 의문들을 풀 방법도 없었기에 남들이 부러워하는 학교에, 남들이 부러워하는 미래의 직업을 꿈꾸며 하루하루를 지옥처럼 보냈던 것 같다.

부모님에 대한 마음 돌아보게 해준 명상

새로운 자극이 필요해 늦은 나이에 군 입대를 선택했다. 하지만 2년이 넘는 군대 생활도 크게 소용은 없었다. 좀 더 새로운 자극을 찾아 교환 학생으로 뉴욕대학교에 다니기로 했다.
대학에 다니며 영어 실력을 키우기 위해 영어 학원에 다닐 때였다. 학원 수업 중 ‘연금술사’라는 책을 읽고 토론하는 시간이 있었다.
책 내용은, 보물을 찾아 떠난 주인공이 숱한 고난을 겪으며 여행을 하다 결국 찾던 보물이 집 앞마당에 숨겨져 있음을 알고 찾는다는 내용.
나에게는 그다지 와 닿지도, 마음에 들지도 않는 결론이었다. 하지만 토론 중 어떤 한 분이 ‘결국 가장 소중한 것은 내 안에 있다는 내용이잖아’라고 말하는 순간 머리에 망치를 맞은 듯 충격을 받았다. 같은 책을 읽고도 내 눈에는 보이지 않은 메시지를 읽어낼 줄 아는 저 사람은, 어떻게 저런 직관력을 가지게 된 건지 매우 궁금했다. 그는 자신은 명상을 하고 있다면서 소개해주었다. 아이러니하게도 한국에서 시작된 마음수련을 나는 그렇게 미국에서 하게 된 것이다.
생애 처음 해보는 명상은 생각처럼 쉽지만은 않았다. 방법이 좋았음에도 나름 아는 게 많았던 나는 한 과정 한 과정을 따지고 시비하며 힘들게 해나갔던 것 같다. 하지만 아무리 따져본들, 자기를 돌아보고 마음을 버리게 하는 명확한 방법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고, 그 효과를 경험하는 만큼 꾸준히 해나갈 수 있었다.
한국에 와서도 명상은 계속됐다. 명상을 하면서 성적에 대한 집착과 인정받고 싶은 마음, 열등감 등 여러가지 마음들을 돌아보고 버렸지만 역시나 나의 가장 큰 숙제는 부모님에 대한 마음이었다.
오랫동안 쌓인 마음이어서인지 잘 버려지지도 않고 떠올릴 때마다 원망이 같이 올라와 명상을 하기조차 힘든 시기도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조금 더 걸릴 뿐이었다. 결국에는 부모님에 대한 모든 원망조차 버릴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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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부모가 처음이라 아무것도 몰라서였다….”

내가 원하는 대로 해주지 않는다고 미워하고, 나에게 잘해주셨던 할아버지 할머니와 끊임없이 비교했던 나. 그 모든 것이 실제가 아닌 철저히 이기적인 입장에서 내 식으로 쌓아둔 가짜마음에 불과했다는 것을 알게 되고 버린 순간, 마치 세상에서 처음으로 시원한 공기를 마신 것처럼 자유로워짐을 느꼈다. 그 후 부모님과 대화조차 잘하지 않던 나는 진정으로 부모님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렇게 부모님을 대하는 내 마음이 바뀌어서일까. 하루는 부모님이 먼저 이야기를 꺼내셨다.
“어린 시절에 너를 그렇게 키운 건 우리도 부모가 처음이라 아무것도 몰라서였다….”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을 이해할 수 없는 것처럼 고통스러운 건 없다. 하지만 내 식으로 판단하고 쌓아 두었던 마음을 버리는 순간, 있는 그대로 이해하고 사랑할 수 있게 되고, 상대도 그 마음을 느끼고 먼저 다가오게 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생각해보면 부모님과의 관계로 인한 열등감 때문에 항상 뭔가를 채우고자 하는 삶을 살았던 것 같다. 하지만 그 마음은 가짜이기에 채울수록 더 부족함을 느끼고 허무해질 뿐이다. 다행히, 어떻게 된 행운인지 나는 마음수련을 시작할 수 있었다. 쌓고 더하고 채우는 것에서는 찾을 수 없었던 답들은 그렇게 돌아보고 버리는 속에서 하나씩 풀려갔다. 비로소 어린 시절부터 가져왔던 삶의 의문들에 대한 답도 찾고 진정한 나 자신을 만날 수 있었다. 초등학교 시절의 장래희망, ‘사람이 되고 싶다’는 그 소망이 진짜로 이루어진 것이다.
이제 더 이상 허무함도 편협함도 없이, 주위의 모든 것을 이해하고 화해하면서 부드럽고 세련되게 내 삶을 이어간다. 내가 어떻게 이런 사람이 될 수 있었을까. 내가 이렇게 행복을 얘기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는 게 참으로 기적 같고 감사하다.


임재현 님은 1983년 경남 진해에서 2남 중 장남으로 태어났으며 포항공과대학 기계과를 졸업했습니다. 어린 시절 환경에 따라 바뀌는 마음을 경험하며 삶과 존재에 대해 근본적인 의문을 갖기 시작했다는 님은, 미국 유학 중 마음수련 명상을 하게 되면서 그 답을 찾게 되었다고 합니다. 현재 현대자동차기술연구소 연구원으로 재직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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